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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2009 경향신문이 주목한 책들

by Dannie9 2010. 1. 5.
ㆍ시대를 읽고 역사의 이면을 뚫다

2009년이 저물어 갑니다. 올해 여러분의 책 농사는 어떠셨나요. 책 읽기에는 겨울같은 계절이 없기에 책 농사는 끊임이 없습니다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이 가꾼 책 농장을 둘러보고 갈무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겁니다. 2009년이 며칠 남지 않은 이 때 경향신문이 일궈온 책 농장을 소개합니다. 경향신문은 모두 53종의 책을 매주 출판면 머리기사에 올렸습니다. 1년 동안 한국에 새로 태어나는 책 4만종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이지만 앞서서 시대를 읽고 인식을 넓히고자 애지중지 키운 결실입니다. | 편집자

‘현실을 직시하고 역사의 이면을 파헤쳐라.’ 경향신문 ‘책과 삶’이 2009년 주목했던 책들이 던진 가장 큰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2009년 경향신문 책과 삶의 시작을 알린 책은 <장기 20세기>였다. 1994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의 저자 조반니 아리기는 헤게모니와 금융팽창의 연관성을 들어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가 1970년대에 시작됐다고 분석하면서 다음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할 지역으로 동아시아, 특히 중국을 주목했다. 2009년의 마지막은 ‘난장판 우리말’에 빨간줄을 그은 이오덕 선생의 <우리 글 바로쓰기1~5>가 장식했다. 두 권 사이엔 묵직하면서도 통찰력이 빛나는 책들이 자리잡고 있다전체 53종의 책 가운데 국내 저자의 것이 20종, 번역서가 33종이었다. 분야별로는 인터넷 교보문고 분류에 따를 경우 정치·사회 분야가 16종으로 가장 많았다. 역사·문화(11종), 인문(10종)이 뒤를 이었다. 기술·공학, 과학, 경제·경영, 시·에세이, 자기계발 분야는 각각 2~4권씩 소개됐다. 일주일에 언론사에 제공되는 신간 가운데 경제·경영, 자기계발 관련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부자가 되는 것, 승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따로 있다는 생각의 반영이었다.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2008년 가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는 자본주의에 근본적인 물음표를 던졌다. 이와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이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었다. 폴라니는 모든 것이 시장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자기조절적 시장’은 허구에 불과하다면서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인간과 자연은 씨가 말라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경제는 인간을 통째로 갈아버리는 ‘사탄의 맷돌’에 다름 아니며 이것의 배경에는 국가가 자리잡고 있다고 갈파했다. 카를 마르크스보다 더 급진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이 책에 대한 지식사회의 관심은 대단했다. 폴라니가 경제사를 중심으로 접근했다면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잠식하는 주인으로 군림하는 자본주의라는 ‘종교’를 국내외 예술가 4명과 사상가 4명의 삶을 통해 풍성하게 폭로해낸 국내 저자의 수작이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부활시킨 인사는 더 있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세계적 불황의 구원투수로 각광받는 케인스의 삶과 철학을 1600쪽이 넘는 방대한 평전에 오롯이 담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대표적인 케인시언답게 <불황의 경제학>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고삐 풀린 금융시스템에 재갈을 물릴 것을 주장했다.

고발하라, 저항하라

책의 출발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고 이런 문제의식은 현실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고발하게 만든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은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법조계 인사들의 내밀한 고백을 생생하게 그려냄과 동시에 면도날 같은 날카로움으로 이면을 헤집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법조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라고 탄식하게 만든 이 책은 탐사형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21세기에 들어섰지만 오히려 규모가 커지고 있는 전 세계 인신매매와 노예제의 참상에 주목했다. 극우파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좌파 반빈곤 운동가로 전향한 아마미야 카린은 <성난 서울>에서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저항운동을 관찰하고 연대를 제안했다.

공동체를 위해

‘책과 삶’은 공동체와 생태친화적 삶에서 대안을 찾아보려 했다.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자본·국가·산업’의 지배틀에서 벗어나 대안적 생태공동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혁명을 표절하라>는 참여와 합의를 통해 공동체를 복원해 수평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매우 구체적인 지침들을 제시했다. <선우야, 바람보러 가자> 역시 자연으로 들어가 ‘다른 삶’을 사는 부부 이야기로 잔잔한 감동을 줬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읽다
숨겨진 역사의 이면은 언제 봐도 흥미진진하다. <전쟁의 집>은 2001년 9·11테러로 공격을 받았던 ‘전쟁공작소’ 펜타곤에 얽힌 역사의 아이러니와 전쟁광들의 불장난을, <패배를 껴안고>는 전후 미군의 지배를 받게 되는 일본인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저항과 아만>은 혁명에 가까운 문학노선을 걷다 요절한 조선후기 시인 이언진을 역사의 뒤안길에서 되살렸고,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은 <삼국유사>에 얽힌 뒷얘기를 역사 드라마보다 재미있게 전달했다. <중국을 낳은 뽕나무>는 중국을 일컫는 ‘차이나(China)’가 뽕잎에서 시작되는 비단에서 유래했다면서 우리의 상식을 뒤집었다.

나는 왜?

인간의 심리와 내면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독서가들이 언제나 주목하는 분야다. <언씽커블>은 재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심리를 추적했고, <인간이라는 야수>는 제목 그대로 평범한 사람이 왜 야수로 돌변하는지를 탐구했다. <미러링 피플>은 인간 감정의 동화현상과 폭력모방 등을 뇌의 작용으로 들여다봤다.

기후변화, 시간이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책도 2권 소개됐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행동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은 <기후변화에 속지마라>와 기후변화를 둘러싼 쟁점들을 총괄하고 절박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 <기후변화의 정치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