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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4할 타자는 사라진 것일까?

by Dannie9 2010. 7. 16.

[JES]

2004년 10월 1일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시애틀과 텍사스와의 경기에서 3회 말 선두타자로 나선 스즈키 이치로는 라이언 드레세를 상대로 좌전 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258호 안타. 1920년 조지 시슬러가 기록한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84년 만에 갈아치우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타율 4할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많은 안타를 생산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2004년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인 262안타를 친 이치로의 시즌 타율은 .372에 그쳤다. 이 타율은 1994년 토니 그윈(.394)을 비롯해 1980년 조지 브렛(.390), 1957년 테드 윌리엄스, 1977년 로드 커루(이상 .388), 1999년 래리 워커(.379), 1948년 스탠 뮤지얼(.376)보다도 낮았다. 결국, 많은 수의 안타가 반드시 타율 4할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41년 마지막 4할을 기록한 테드 윌리엄스와 2004년 한 시즌 최다안타를 기록한 스즈키 이치로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지금이야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마지막 4할 타율(.406)을 기록한 것이 꿈결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는 'TOP'가 아닌 '그냥 커피'였다. 1930년 빌 테리가 타율 .401(내셔널리그 마지막 4할 타율)을 기록했으며, 1922년에는 조지 시슬러(.420), 로저스 혼스비, 타이 콥(이상 .401) 등 4할 타자가 무려 3명이나 배출됐다. 또한, 로저스 혼스비는 1920년대에 3번(22, 24, 25년) 타율 4할을 넘겼다.

당시로써는 특별할 것이 없는 4할 타율이었지만, 테드 윌리엄스에게는 특별함이 존재했다. 테드 윌리엄스는 이전의 4할 타자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전의 4할 타자가 타율을 올리기 위해 단타를 치는 데 주력한 것에 비해 테드 윌리엄스는 장타를 노리는 풀스윙으로 일관했다. 그가 37홈런으로 홈런왕에 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어쨌든 이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 테드 윌리엄스가 출장한 경기 수는 143경기(당시 한 시즌 154경기). 게다가, 대타로 나선 경기도 적지 않았고, 볼넷도 무려 147개를 얻으며 456타수를 기록했다. 같은 143경기에 출장한 조 크로닌이 518타수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62타수나 적은 것이다. 또한, 144경기에 나선 돔 디마지오는 584타수를 기록했다.

타수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눈치가 빠른 이라면 조지 브렛과 토니 그윈도 부상과 파업으로 말미암아 적은 경기 수와 타수를 기록한 것을 떠올릴 것이다.

즉, 타율 4할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대량 안타보다 적은 타수가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700타수를 기록한 이가 타율 4할을 치기 위해서는 무려 280안타가 필요하다. 반면, 600타수라면 240안타면 에누리없는 타율 4할을 기록할 수 있다. 2002년 타율 .370을 기록한 배리 본즈의 안타 수는 149개. 198개의 볼넷을 얻었기에 가능한 수치다.

타수가 많으면 타율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두 경기 몰아친다고 해서 타율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치로가 84년 만에 한 시즌 최다안타를 갱신했을 정도로 한 시즌에 칠 수 있는 안타 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1982년 타율 .412를 기록한 백인천 MBC 감독 겸 선수에 이어 4할 타율에 근접한 이는 1994년 이종범(.393)과 1987년 장효조(.387)다.

3인의 성적에서 알 수 있듯이 백인천과 장효조, 이종범과의 차이는 타수다. 결국, 4할 타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안타 생산능력만큼이나 볼넷을 얻어내는 능력에 운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라진 4할 타자가 다시 출현한다면, 그 타자는 교타자가 아닌 볼넷을 다수 얻을 수 있는 장타자일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진화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란 다양성의 증가를 의미할 뿐이지, 어떤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진보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의 진화라는 것도 생명이라는 전체 시스템 - 풀하우스의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다양성의 하나로 바라봤다.

즉, 인간은 자신들이 가장 고등한 생물체라는 증거로서 자주 이야기하는 언어능력과 같은 것들도 사실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과정 중에서 생겨난 우연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진화를 다양성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우연스러운 돌연변이와 이에 대한 자연의 선택 결과로 파악했다. 결국,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은 야구의 전반적인 수준이 향상되면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줄었기 때문이다. 돌연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줄었을 뿐 그 존재가 다시 출현할 가능성을 아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 시기가 언제일지 알 수 없을 뿐.

글 : 야구라 손윤 (yagoora.net)